보건당국 “기침 안 해 병원서 메르스 의심 못한 듯”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방역망이 또 한 번 뚫렸다.당국의 늦은 병원 정보 공개에다 의료진과 환자의 오판이 사태를 확산시켰다.
부산지역 두 번째 메르스 환자인 이모(31)씨는 컴퓨터 관련 업무로 대전 대청병원에 파견 근무를 갔다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씨가 지난달 30일까지 일했던 이 병원은 확진자가 발생한 병동 전체를 폐쇄하는 ‘코호트 격리’(Cohort Isolation) 상태로 이달 7일 병원명이 공개됐다.
이씨는 이 병원에서 2주간 근무해 충분히 감염을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때까지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병원명이 공개되지 않아 이씨는 부산으로 돌아온 이후 평소와 다름 없이 직장을 다니며 일상생활을 했다.
이달 2일 복통을 동반한 몸살 증세로 부산센텀병원을 응급실을 찾았지만, 병원 측은 메르스 감염을 의심하지 않았다.
역학조사 결과 이씨는 이미 이날 메르스 증세가 발현한 것으로 부산시 보건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다음 날 조퇴해 집에서 휴식을 취한 이씨는 4일에도 체온이 38.5도까지 올라가 집 근처 자혜내과를 찾아 링거를 맞고 약을 처방받았다.
대청병원에서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이후여서 관찰 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을 법했지만, 외주업체 파견자였다는 이유로 통보 대상에서 빠지는 바람에 그 누구도 메르스 감염을 의심하지 않았다.
이렇게 보건당국이 대청병원 근무자와 방문자를 완전하게 파악하지 못하면서 방역망에 구멍이 생겼다.
다음 날도 이씨는 한서병원 소화기내과에서 진료받고 약을 구입해 집으로 돌아갔다.
이씨는 6일 오후 발열을 동반한 복통으로 부산시 수영구 좋은강안병원 응급실을 찾기도 했다.
몸에 이상증세가 나타났지만, 이씨나 의료진 모두 메르스에 감염됐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병원에서도 단순 감기몸살로 치부하고 2시간 만에 이씨를 돌려보냈다.
이틀 후 병원에 입원까지 했지만, 기침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 11일까지 아무도 이씨의 메르스 감염을 의심하지 않았다.
발열과 기침뿐만 아니라 복통 역시 메르스의 한 증상인데 이런 사실을 의료진이 간과한 것으로 보인다.
병원 4곳을 들리는 동안 어느 병원에서도 이씨의 메르스 감염을 의심하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실수다.
이씨 역시 7일 병원 명단이 공개됐고, 그동안 방문지와 증세 등을 생각하면 충분히 메르스 감염을 의심할 수 있었는데도 파견 근무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12일 오전에야 병원 측이 메르스 감염을 의심하고 보건당국에 신고하는 한편 음압병실에 격리조치했다.
부산시 관계자는 13일 “병원 의료진이 기침증세가 없어 메르스를 의심하지 못했고 이씨 또한 의료진에게 대청병원 근무 사실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부산 첫 메르스 확진자인 81번 환자 역시 이달 1일 증세가 나타났지만, 호흡기 증상이 없었다는 이유로 여러 병원에 다니는 동안 메르스 감염을 의심받지 않았다.
이 때문에 81번 환자는 4일간 택시를 타고 병원과 약국, 식당 등을 다니는 동안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다.
이번 양성반응자의 이동경로를 고려하면 부산지역 의료 현장에서 81번 환자 때와 비슷한 실수가 발생한 것이다.
시 관계자는 “대청병원에서 근무했던 사실을 제대로 통보받았거나 일선 병원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했더라면 사태가 이렇게 나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시는 81번 환자와 마찬가지로 양성 반응자의 기침 증세가 늦게 나타난 점을 고려해 이씨의 전파력이 크지 않기를 기대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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