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백혈병환우회 환자 355명 조사
전문간호사 골수 검사 찬성 39%·반대 49%
찬성 의외로 높아, 환우회 “의료공백 장기화 영향”

연합뉴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매달 바뀌는 레지던트보다 숙련된 전문 간호사가 골수검사를 하는 게 좋습니다. 레지던트가 바뀌는 시기에는 골수검사 안 하게 해달라고 빕니다. 그 심정 환우 아니면 모릅니다.”(백혈병 환자 A씨)
대법원이 지난 12일 ‘숙련된 전문 간호사도 골수 검사를 할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을 한 가운데, 실제로 골수 검사를 받은 적이 있는 백혈병·혈액암 환자의 39%는 전문 간호사 골수검사에 찬성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의료공백 사태 장기화로 전문 간호사들이 의료 현장에서 전공의 업무를 대체하는 사례가 늘면서 의사들의 ‘성역’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백혈병환우회는 지난 10월 24~31일 골수검사 경험이 있는 백혈병·혈액암 환자 355명을 대상으로 골수검사에 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전문 간호사 골수 검사 찬성 의견이 예상외로 높게 나왔다고 17일 밝혔다. ‘골수검사 관련 교육과 수련을 받고, 의사의 지도·감독을 받으면 전문간호사도 골수검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찬성하는가’란 질문에 39.3%가 ‘찬성한다’고 했고, 49.4%가 ‘반대’, 11.3%가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반대 의견이 많지만, 찬성 의견 또한 적지 않다는 점에서 인식의 변화가 이뤄지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환우회는 밝혔다.
안기종 한국백혈병환우회장은 “의료공백 사태 장기화로 의료행위 전부를 의사에게만 맡길 게 아니라 간호사, 의료기사, 응급구조사, 약사, 한의사 등의 보건의료인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커지고 있어 환자 단체도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국회는 지난 8월 의사의 판단과 지도·위임이 있으면, 간호사가 진료지원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간호법’ 제정안을 통과시켰다. 진료지원(PA)간호사도 골수검사를 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는 간호법 시행규칙에도 반영될 가능성이 있다. 대법원은 “골수검사는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진료행위 자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환자의 개별적인 상태 등에 비춰 위험성이 높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숙련도를 갖춘 간호사가 시행할 수 있는 의료행위로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휠체어를 탄 환자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설문에 참여한 백혈병 환자는 “대학병원에서 골수검사를 하는 의사도 ‘숙련된 의사’가 아닌 ‘수련받는’ 레지던트”라며 “매년 바뀌는 레지던트보다는 숙달된 전문간호사가 더 신뢰간다”고 했다. 실제로 환자들은 비숙련 레지던트에게 골수검사를 여러 번 받아 고통과 불편을 겪은 경험이 있었다.
골수검사를 하려면 골수에 침을 꽂아 골수액을 채취해야 하는데, 한 번에 골수검사에 성공했다는 응답은 61.9%였고, 38.1%가 여러 번 시행 끝에 성공했다고 답했다. 두 번째에서 성공했다는 응답이 50.4%, 세 번째에서 성공이 27.4%였고 열 번 넘게 시행한 끝에 겨우 성공했다는 응답도 있었다.
한 백혈병 환자는 “레지던트가 4회 이상 시도했으나 실패한 경험이 있다”면서 “당시 검사실 간호사가 옆에서 방향과 방법 등을 알려줬으나 레지던트가 무시하고 진행했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환자는 “서울대병원에는 ‘골수 검사의 신’으로 불리는 간호사가 있다. 도리어 경험이 부족한 레지던트들이 하다가 고통스러워 환자들이 소리를 지르고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반면 전문간호사 골수검사에 반대한 환자는 “골수검사를 할 때마다 걱정되고 두려운데, 만약 의사가 아닌 전문 간호사가 한다면 너무 무서워서 못 할 것 같다”고 했다. 반대 의견을 밝힌 다른 환자도 “골수 검사가 채혈하듯 여러 번 해도 환자에게 큰 부담이 없으면 모를까, 2차 감염 우려도 있고 채취하는 과정에 여러 변수가 있으니 꼭 의사가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 간호사가 하더라도 의료사고가 발생할 경우 누가 책임질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환우회는 “골수천자, 요추천자, 복수천자 등의 침습적 검사행위는 환자안전사고 발생 위험이 크기 때문에 숙련도가 부족한 전공의로부터 환자가 고통과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병원은 수련 대상인 환자 안전과 인권을 보장하는 가이드라인과 매뉴얼을 만들어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