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사노예’ 피해자 극도 불안증세…“강압 환경, 육체 학대 영향”

‘축사노예’ 피해자 극도 불안증세…“강압 환경, 육체 학대 영향”

입력 2016-07-17 11:03
수정 2016-07-17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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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기피 증세…의사 표현 못하고 ‘네, 아니오’만 대답

19년 동안 홀로 생활하며 강제노역에 시달렸던 지체장애인 ‘만득이’ 고모(47)씨는 경찰 조사에서 극단적인 불안증세와 대인기피증을 보이며 자신이 겪었던 피해를 제대로 진술하지 못했다.

청원경찰서는 지난 15일 오후 3시부터 2시간가량 고씨를 불렀지만, 심리적으로 불안증세를 보이며 횡설수설하는 탓에 조사에 애를 먹었다.

죄를 지은 것이 아니고, 오히려 가해자를 벌주기 위해 피해진술을 받는 자리였지만 그는 안면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는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는 게 경찰설명이다.

처음 보는 낯선 환경 때문인지 조사를 받는 내내 주변인들의 눈치를 살폈다.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반복적으로 자신의 팔을 꼬집는 등 불안한 심리상태를 감추지 못하고 그대로 드러냈다.

조사에 나선 경찰은 피해자 진술 확보는 고사하고 그를 안정시키는 데 주력해야 했다. 2시간 조사 중 1시간 30분가량은 그를 진정시키는 데 소비됐다. 고씨를 제대로 조사한 시간은 30분에 불과했다.

고씨가 논리력이나 숫자 개념이 없다 보니 ‘예’나 ‘아니오’라는 단답형 답변을 받는 식으로 조사할 수밖에 없었다.

고씨가 판정받은 지적장애 2급은 일반적으로 지적 능력이 초등생 이하 수준이어서 의사결정이나 표현력이 떨어진다.

전반적으로 학습이나 대인관계, 일상생활, 경제활동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일반인과는 확연히 다른 어려움을 겪는다.

고씨의 경우,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끌려온 축사에서 온종일 중노동에 동원되고 사람들과 제대로 된 의사소통 없이 홀로 지낸 생활이 무려 19년에 달하면서 인지능력이 더욱 심각하게 저하됐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충북 지적발달장애인복지협회 관계자는 “개인마다 특성이 다르지만 오랜 기간 혼자 생활하거나 제대로 된 사회활동을 하지 못하면 같은 장애 2급이라고 해도 수준의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강압적인 노동환경과 학대가 이어지면서 주변인들에 대한 의심이나 반발심이 커졌고 자존감도 낮아져 불안감과 대인기피증이 극대화됐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황순택 충북대 심리학과 교수는 “오랜 기간 강압적이고 폐쇄적인 분위기 속에서 일했다면 정상적으로 주변인들과 사회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없을 것”이라며 “피해 의식까지 더해지면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게 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학습 효과에 의해 낯선 사람에게 말을 잘못했다가 어떤 피해를 볼지 모른다는 의식이 내재해 있어 자기가 겪은 피해를 밝히지 못하는 것”이라고 진술했다.

애초 지난 15일 고씨의 피해자 진술을 확보, 수사에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했던 경찰은 예상치 못한 상황을 접하고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심리적 불안증세에 시달리는 그를 위해 경찰은 전날 어머니를 상봉시켜 집에서 지내게 했고, 조사 때도 장애인 복지 전문가, 상담가를 배석시켜 안심시켰다.

경찰 관계자는 “장기간 유리된 생활을 해왔고 낯선 환경에 놓이다 보니 불안한 심리상태가 계속되고 있다”며 “수사도 중요하지만, 현재로써는 극도의 불안증세를 보이는 고씨 치료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고씨는 1997년 청주시 오송읍에 있는 집을 나가면서 가족과 소식이 끊겼다. 19년 가까이 행방불명 상태였던 고씨는 소 중개인의 손에 이끌려와 강제로 정착하게 된 김모(68)씨 부부의 집(청주시 오창읍) 축사 창고 쪽방에서 최근까지 생활해왔다.

김씨가 키우는 40여 마리를 키우는 강제노역에 시달려오던 그는 지난 1일 오후 9시께 주인 김씨를 피해 집을 뛰쳐나와 비를 피하려고 마을 인근 한 공장 건물 처마 밑에 들어갔다가 경보기가 울리는 바람에 경찰이 출동, 노예와 같았던 19년 삶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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