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슬픈 사람들] 45m 굴뚝에서 매일 118배… 차례 그리워요

[명절이 슬픈 사람들] 45m 굴뚝에서 매일 118배… 차례 그리워요

오세진 기자
입력 2015-02-17 21:58
수정 2015-02-17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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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공 농성 267일 스타케미칼 해고노동자 차광호씨

“가족이랑 한 상에서 밥을 먹고, 얘기를 나누는 것만큼 행복한 시간은 없습니다. 여기 올라와서야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일상이 가장 큰 행복이라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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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구미 스타케미칼 굴뚝에서 차광호씨가 찍어 보낸 ‘셀카’.  차광호씨 제공
17일 구미 스타케미칼 굴뚝에서 차광호씨가 찍어 보낸 ‘셀카’.
차광호씨 제공
폴리에스테르 원사 제조업체인 스타케미칼의 해고노동자 차광호(46)씨는 지난해 5월부터 이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 있다.

설 연휴를 앞둔 17일에도 차씨는 가족과 차례 음식을 준비하며 담소를 나눌 수 없는 처지다. 차씨는 경북 구미국가산업단지에 있는 45m 높이의 스타케미칼 공장 굴뚝 꼭대기에서 267일째 농성을 하고 있다.

경영악화로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권고사직 형식으로 노동자들을 내보낸 뒤 분리매각을 시도하는 사측에 맞서 공장 재가동과 해고자 재고용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차씨는 지난해 추석에 이어 올 설 연휴도 가족들과 함께 보내지 못한다. “명절 때마다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곤 했어요. 전북 익산에 있는 큰형도 꼭 부모님 집에 오고요. 며칠 전 통화하면서 어머니가 ‘우리 아들이 저 추운 데서 고생하고 있는데’라며 아예 설 차례상도 차리지 않고 음식도 안 하시겠다는 걸 간신히 말렸어요.” 차씨는 “명절은 내년에도 있다”며 70대 노모를 달랬다고 했다.

차씨 부모는 스타케미칼 구미공장에서 남쪽으로 불과 2㎞ 떨어진 곳에 살고 있다. 산줄기에 가려 보이지는 않지만, 차씨는 지난달부터 부모가 사는 집을 향해 118배를 시작했다.

“점심을 먹기 전에 118배를 해요. 희망사항 13가지를 담았어요. 대장암 판정을 받은 장모님의 회복과, 아내랑 부모님, 함께 투쟁하는 동료들의 건강, 투쟁 승리,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등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8개월 넘게 굴뚝에서 생활하면서 생명의 위협을 수차례 경험했다. 늦여름에는 먹다 남긴 음식을 다음날 먹다가 복통으로 고생했고, 여름에는 태풍 때문에 굴뚝이 흔들려 몸을 묶고 잠들기도 했다. 지난해 12월에는 동창(추위로 손·발 등 신체 일부가 얼어서 살이 허는 것)에 걸린 적도 있다.

의료진은 “정밀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고 했지만 차씨는 “해고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내려갈 수 없다”며 제자리 뛰기와 팔굽혀펴기 등으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스타케미칼 구미공장 소유주인 스타플렉스는 경영적자를 이유로 2013년 1월 구미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사측은 정규직 노동자에게 권고사직을,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근로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차씨를 비롯해 현재 11명의 노동자가 퇴사를 거부한 채 지난해부터 복직투쟁 농성을 하고 있다. 사측은 법원에 해고노동자들을 상대로 2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차씨는 지난해 12월 고공농성을 벌였던 씨앤앰 노동자들의 원만한 해결을 보면서 “희망을 봤다”고 말했다. “하루빨리 투쟁이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부모와 내 식구들과 매일 얼굴 보고 비벼가며 살고 싶네요. 올 추석에는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한가위 보름달을 볼 수 있길 기대합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2015-02-18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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