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미·소유욕… 절경山水의 재구성

인공미·소유욕… 절경山水의 재구성

입력 2010-11-05 00:00
수정 2010-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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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채집해 자유자재로 재구성하고, 자연을 뚝 잘라내 극단의 인공적인 산수를 만들어낸다. 한국화가 박병춘(44) 작가와 이정배(36) 작가가 펼쳐보이는 현대적 산수의 풍경들이다. 자연에 순응하는 무위자연(無爲自然)과 은일(隱逸)의 미학을 추구해온 전통 산수화와 달리 자유로운 상상력과 현실비판적인 시각으로 산수의 새로운 개념을 모색해온 두 작가의 개인전이 나란히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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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서 12월 3일까지 선보이는 박병춘 작가의 전시 제목은 ‘산수 컬렉션’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작가가 국내외 오지에서 ‘채집’한 산수 풍경들을 다양한 재료로 구현한 설치 작품들이 전시됐다.

1층에 들어서면 거대한 폭포가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다. 7m 높이의 천장에서 바닥으로 내리꽂히듯 늘어뜨린 흰색 천은 그대로 심산유곡의 시원한 물줄기를 닮았다. 히말라야 트레킹에서 본 폭포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3면 벽에는 먹과 붓으로 강원도 영월과 정선의 풍경을 그려넣었다. 바닥에 설치된 검은 색 수조는 폭포의 심도(深度)를 더하며 명상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버려진 사물로 연출한 풍경들도 이색적이다. 시장 상인들이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검은 비닐봉지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비닐산수’는 인도를 여행할 때 강렬한 기억으로 각인된 검은 산맥의 느낌을 재현한 것이다. 현대 소비사회의 가벼움과 일회성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여행 중에 모은 다양한 모양과 색깔의 작은 돌들을 박물관의 유물처럼 전시한 ‘산수채집’도 인상적이다. 돌 하나하나마다 히말라야, 내장산, 대관령, 부암동 등 수집 장소를 적어놓아 관람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칠판에 분필로 풍경화를 그리고, 그 앞에 의자를 가져다 놓은 ‘산수공부’는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습득하게 되는 산수의 의미를 소박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시점으로 그린 마을 풍경 위에 꽃, 비행기, 의자, 새 등을 자유롭게 배치한 회화 작품도 한국화의 정형적인 틀을 깬 새로운 시도로 눈길을 끈다. (02)736-4371.

이정배 작가에게 자연은 소유욕을 자극하는 욕망의 대상이다. 서울 사간동 갤러리 16번지에서 오는 28일까지 열리는 전시는 ‘모어’(More)란 제목에서 드러나듯 멋진 장소, 기막힌 풍경을 봤을 때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본능적 충동을 시각적으로 충실하게 표현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거대 자연을 어떻게 소유할 수 있을까. 의외로 방법은 간단하다. 가령 설악산 같은 명승지에서 특정 장소, 특정 풍경을 사진으로 찍어 한지에 인화한 뒤 붓질을 가한다. 인화지 대신 한지에 찍힌 사진은 이미지가 종이에 스며드는 것처럼 보여 마치 수묵화 같은 느낌을 준다. 작가는 이 사진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소와 풍경의 일부를 도려내 그것을 조각으로 형상화한다. 전시장의 모든 작품은 한지사진과 그 사진 속 특정 풍경을 입체적으로 구현한 설치작품이 한쌍을 이룬다.

작가는 잘라낸 산수 풍경에 돈, 권력, 여자 같은 온갖 욕망의 아이콘을 배치한다. 설악산 능선에서 잘려진 산봉우리는 밧줄과 그물에 포획돼 있고, 그 위에는 질펀하게 먹고 마시는 사람들과 성적 쾌락에 들뜬 여성들, 탱크와 총 같은 무기들이 놓여 있다. 소유할 수 없는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빚어낸 풍경들은 도발적이고,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온다.

작가는 “시대 변화에 따라 산수화의 의미도 달라져야 한다.”면서 “현실을 반영하는 산수의 개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02)722-3503.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2010-11-05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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