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연극 ‘장수상회’

[공연리뷰] 연극 ‘장수상회’

김승훈 기자
입력 2016-05-24 18:00
수정 2016-05-2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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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의미 되새기게 한 치매 노인의 황혼 로맨스

집안에 치매 노인이 있으면 가족들이 웃을 날이 없다고 한다. 언제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르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기에 잠시도 쉴 틈이 없다. 가족 간 책임을 떠넘기며 고성이 오가다 종국엔 요양원에 맡겨진다. 연극 ‘장수상회’는 이런 현실과 멀찍이 떨어진 지점에서 시작, 한편의 동화를 펼쳐낸다. 치매를 황혼의 사랑으로 아름답게 버무렸는데 현실에선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한 서사가 역설적으로 가족의 의미를 더더욱 되새기게 한다.

‘김성칠’(백일섭 분)은 70대 치매 노인이다. 하루하루 옛 기억을 잃더니 아내, 아들, 딸마저 알아보지 못하게 된다. 자신이 달동네 구멍가게인 ‘장수상회’ 점장이라는 사실만 기억한다. 어느 날 그런 성칠 앞에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은 여인 ‘임금님’(김지숙 분)이 나타난다. 금님은 장수상회에 딸린 창고를 개조해 꽃집을 연다. 성칠은 첫눈에 반하지만 마음과는 정반대로 행동한다. 금님에게 못되게 굴고 막말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언제나 다정다감하게 다가오는 금님에게 성칠도 죄책감을 느끼고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둘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여생을 함께하기로 한다.

두 노인의 닭살 돋는 연애는 웃음을 자아내게 했고, 오해로 성칠이 금님 곁을 떠날 땐 마음이 짠했다. 미키마우스 머리띠를 한 성칠이 커다란 곰 인형을 어깨에 짊어지고 걷는 모습은 로맨틱하기까지 했다. 이 작품이 이처럼 두 노인의 연애에만 초점을 맞췄다면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확보하지 못하고, 젊은 관객들에게도 외면받았을 듯하다. 극에 생명을 불어넣고 오래도록 감동의 여운을 맴돌게 한 건 전적으로 후반부의 반전이다. 성칠과 금님, 장수상회 김 사장, 금님의 딸, 이들을 둘러싼 비밀이 벗겨지면서 감동이 몰아쳤다. 초반에 미용사로 소개된 박양의 변신이 가장 신선했다.

막이 내린 뒤에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묵직함이 지속됐다. 연극은 계속 묻고 있었다. 당신의 아버지가 치매에 걸렸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장수상회’는 지난해 4월 개봉한 강제규 감독의 동명 영화를 무대로 옮겼다. 시공간의 제약에도 영화를 뛰어넘는 감동의 도가니가 연출됐다. 23년 만에 연극 무대에 복귀한 노장 백일섭과 김지숙의 열연 덕택이다. 오는 29일까지, 서울 종로구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4만~6만원. (02)929-1010.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2016-05-25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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