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그들이 사는 세상’을 들춘 ‘소셜포비아’

<새영화> ‘그들이 사는 세상’을 들춘 ‘소셜포비아’

입력 2015-03-02 07:21
수정 2015-03-02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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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베이징올림픽 당시 패배한 선수를 두고 한 누리꾼이 악성 댓글을 남겼다.

온라인은 분노 여론으로 들끓었고 이른바 ‘회손녀’라고 불린 이 누리꾼의 신상 정보가 유출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회손녀’를 어떻게든 단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남자 누리꾼들이 ‘회손녀’ 집 근처 PC방에 모여드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홍석재 감독의 첫 장편 영화인 ‘소셜포비아’는 바로 7년 전 이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제목은 사회공포증(social phobia)이 아니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공포의 포비아를 합한 조어다. SNS 때문에 발생하는 온갖 병리적인 현상들을 뜻한다.

영화는 한 군인의 자살 소식에 악성 댓글을 남긴 누리꾼 레나에 대해 사람들이 분개하는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레나와 온라인에서 전쟁을 벌이다가 실제 ‘맞짱을 뜨기’ 위해(온라인 용어로 ‘현피’) 오프라인으로 나온 누리꾼들은 의기투합해 그의 집으로 몰려간다.

인기 BJ(방송 진행자) 양게가 주도하는 이 ‘현피 원정대’에는 노량진 고시원에서 생활하면서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지웅(변요한 분)과 용민(이주승)도 포함돼 있다.

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조금 전까지 온라인에서 설전을 벌였던 레나의 목맨 시신이다.

이 모든 순간은 양게 노트북을 통해 전국으로 생중계되고 ‘현피 원정대’는 엄청난 비난에 직면한다.

이들은 레나가 살해됐다고 주장하며 살인범을 찾아내려고 애쓰지만, 원정대 내부에 살인범이 있다는 의심을 하기에 이른다.

영화는 온라인의 이전투구가 오프라인의 물리적 싸움으로 이어지는 ‘현피’라는 아직 낯선 소재에 SNS를 통한 생중계 방식을 빌려와 속도감과 긴장감을 한껏 살렸다.

온라인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행태를 사실적으로 포착한 데다 이를 SNS 특성을 살려 시각화하는 데도 많은 공을 들인 흔적이 뚜렷하다.

지난달 27일 왕십리CGV의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홍 감독은 “관객이 극장이 아니라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은 느낌을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평소 온라인을 유심히 관찰한다는 홍 감독은 “웹상에서는 남녀 대립이 있고 꼭 여성 혐오가 아니어도 (그쪽으로) 많이 쏠리는 성향이 있다”면서 “가장 약한 사람이나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고 많이 언급되는 사람을 표적으로 달려드는 성향이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 마녀사냥으로 한 여성을 죽음으로 몰아간 누리꾼들이 자신들이 마녀사냥 될 위치에 처하고, 다시 자신들 내부에서 제물을 찾아 마녀사냥하는 아이러니가 흥미롭다.

지웅과 용민을 만난 레나의 옛 대학 친구는 “’에고’(ego·자아)는 강한데 알맹이가 없다. 요즘 애들 다 그렇지 않느냐”고 말한다.

영화는 그러한 알맹이 없음이 SNS의 폐단과 결합했을 때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시신과 맞닥뜨려도 신고는커녕 온라인 흔적부터 지우고, 사람의 죽음 앞에서 죄책감은커녕 전국적인 화제의 인물이 된 것에 재미를 느끼고, 살인범을 잡기 위한 자체 현장검증을 한다며 생중계되는 방송에서도 킬킬거리는 이들의 모습에서는 섬뜩함과 찝찝함을 느낀다.

’그들이 사는 세상’을 들춰 보여준 듯한 영화는 불안한 청춘, 익명성, 관계의 단절, 사회적 매장 등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용민의 과거가 전면에 등장한 이후부터 이야기가 헐거워지는 점이 아쉽다.

영화는 작년말 화제의 드라마 tvN ‘미생’과 SBS TV ‘피노키오’에 각각 등장했던 변요한과 이주승의 주연작이라는 점에서 더 화제를 낳았다.

두 배우뿐 아니라 BJ 양게 역의 배우 류준열도 뚜렷한 인상을 남긴다.

3월 12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102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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