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불통·민생 고통·정치 분통 시대 위기가 그를 다시 부른다
지난해 정도전, 이순신에 이어 이번에는 ‘류성룡(오른쪽·1542~1607) 열풍’의 조짐이 보인다. KBS1 TV 사극 ‘징비록’(왼쪽)이 지난 14일 첫 전파를 탄 뒤 시청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고, 서점가에서는 류성룡과 그의 대표 저술 ‘징비록’ 관련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적 위기 속에서 고군분투한 재상과 그가 남긴 반성의 기록이 지금 다시 조명을 받는 배경은 뭘까. 문화계 안팎에서는 “국정 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무능한 정치권, 곤궁한 민생, 세월호 참사,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 등 시대적 위기 상황이 그를 다시 불러내고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출판가에는 류성룡 바람이 앞서 불었다. KBS가 ‘징비록’의 제작을 공식 발표한 지난해 6월 이후 류성룡과 징비록, 임진왜란을 조명한 책이 쏟아지고 있다. 이수광, 이재운, 이번영, 박경남 등 작가들은 ‘소설 징비록’을 줄줄이 내놨다. 16~17세기 동아시아 국제전쟁과 이순신 전문가 배상열의 ‘징비록: 비열한 역사와의 결별’(추수밭), 시인 김기택과 전쟁사 연구 대가인 임홍빈의 합작품 ‘징비록: 유성룡이 보고 겪은 참혹한 임진왜란’(알마), 미술사가 이종수의 ‘류성룡, 7년의 전쟁: 징비록이 말하는 또 하나의 임진왜란’ 등 인문역사 서적도 잇따라 출간됐다.
동시대 영웅인 이순신에 비해 대중에 상대적으로 낯선 류성룡이 사회담론의 구심체가 되는 배경에 대해 전문가들은 “조선 역사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늘어난 데다 무엇보다 위기의식이 팽배한 지금의 사회상과 그때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으로 압축한다. 정해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류성룡은 전란 속에서 자신을 내던지고 전쟁에 대해 치밀하게 기록하는 등 국정 책임자로서의 역할을 곱씹어 보게 하는 인물”이라면서 “최근 현실정치에 실망한 대중이 국가적 위기를 극복할 희망을 그에게 투영해 보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전방의 행동가였던 이순신에서 후방의 개혁 인물 류성룡으로 대중적 관심이 옮겨간 대목도 새겨볼 만하다. 세월호 참사로 시름에 빠진 지난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의 영웅담에 열광했던 대중이 뼈아픈 반성이자 패배의 기록인 ‘징비록’에 주목하는 이유에 대해 역사 저술가 배상열씨는 “전쟁의 위험을 방치하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연이어 자초한 조선은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세월호 침몰 등 재난이 반복되는 지금의 우리 상황과 다를 바 없다”면서 “드라마 ‘징비록’ 역시 전쟁의 암운이 드리우는데도 편 가르기에만 몰두한 조선 조정의 무능함을 가감 없이 그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현 국정에서 거듭되는 인사 난맥상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류성룡 다시 보기’를 부추긴다는 시각도 많다. 임진왜란이 승리하기까지는 이순신과 권율 장군을 발탁해 추천한 류성룡의 개혁정신이 바탕이 됐다는 것이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난세의 영웅을 돌아보는 작업은 혼란스러운 현실을 극복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그래픽 김송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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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25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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