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내비게이션/박찬구 논설위원

[길섶에서] 내비게이션/박찬구 논설위원

입력 2014-10-29 00:00
수정 2014-10-29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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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 경력 20년이 다 되어 간다. 낯설고 먼 길에는 지도책이 필수였다. 서울 근교 드라이브길이든, 수백㎞ 떨어진 국립공원이든 거리낌이 없었다. 두툼하고 손때 묻은 지도책 서너 권은 늘 든든한 길 친구였다. 초행길에 방향을 놓치면 차를 세워 두고 동네 지리에 익숙할 법한 행인이나 음식점 주인에게 도움을 청했다. 전망 좋은 길에서는 예정에 없이 방향을 틀기도 했다. 길에서 길을 묻고 낯선 곳에서 나를 찾는 쏠쏠한 여정이었다.

내비게이션을 처음 만난 건 4년 전 경기지역 출장길에서였다. 후배가 모는 승용차를 타고 가는 내내 날 선 기계음이 귀에 거슬렸다. 샛길도 곁눈질도 허용되지 않았다. 한 치의 여유도 없는 생경하고 마뜩잖은 경험이었다. 지금은, 내비게이션 없이는 삼사십 분 거리도 머뭇거리기 일쑤다. 최신 도로 정보가 네댓 차례 업그레이드되는 동안 지도책은 하나 둘 사라졌다. 수백㎞는 고사하고 수십㎞ 거리도 그때그때 빠른 길을 알리는 내비게이션에 의존하는 처지가 됐다.

내 머릿속의 지도가 사라져가고 있다. 내비게이션의 관성에 길들어 일상의 역마살까지 잦아드려나.

박찬구 논설위원 ckpark@seoul.co.kr
2014-10-29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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