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0년 9월 19일자 매일신보에 실린 포드자동차 광고.
국내 자동차 판매회사의 효시는 1913년에 설립된 ‘오리이 자동차상회’라고 한다. 또 광산 개발을 위해 국내에 들어왔던 테일러 가문의 윌리엄 테일러도 포드와 시보레 자동차를 취급했다. 테일러의 사무실은 태평로에 있었다. 1933년 우리나라 사람이 차린 자동차 판매회사 1호는 소공동 소재 ‘경성자동차상회’다. 경성자동차상회의 설립자는 박용운으로 당시 자본금이 100만원이었다고 한다. 1930년대에 국내에서는 10여개의 자동차 상회들이 난립해 자동차 판매 경쟁을 벌였다. 수요가 늘어나고 딜러들의 경쟁적 판매로 자동차 수도 점점 늘어나 광복 당시에는 7300여대에 이르렀다. ‘녹 안 나는 동(銅)’이라는 제목 아래 새로운 포드 세단을 선전하는 위 광고는 일본 포드자동차 회사에서 제품 광고를 한 것으로 보인다.
1920년대까지 일본은 자동차를 생산하지 못했다. 도쿄대 기계과 출신 도요다 기이치로는 미국으로 가서 자동차 제작 기술을 직접 보고 충격을 받고는 일본으로 돌아가 1933년 나고야에 공장을 만들어 자동차 제조에 뛰어들었다. 그의 아버지가 세운 모태 기업은 원래 자동방직기 제작소였다고 한다. 1935년 5월 첫 시제 승용차와 시제 트럭이 완성됐다. 이렇게 해서 일본 최초의 자동차 제조회사인 도요타가 독립해 설립된 때는 1937년 8월이었다(창업주 이름은 ‘도요다’로, 회사 이름은 ‘도요타’로 쓴다). 그런데 이 무렵 국내에도 ‘조선국산자동차회사’라는 자동차 제조 회사가 일본의 자동차 회사인 동경와사전공계(東京瓦斯電工系)에 의해 설립됐다. 현 인천 부평구 산곡동 미산초등학교 자리에 있었다. 처음에는 20만평(약 66만㎡) 규모의 공장에서 자동차를 생산할 계획이었지만 재정상의 문제로 도쿄자동차회사에 1939년에 합병됐고 규모도 4만평(약 13만㎡)으로 축소됐다고 한다. 자동차 완제품을 생산하지는 않고 스프링 등 부품을 제조했다.
2021-05-03 30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