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실제(失題)/박팔양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실제(失題)/박팔양

입력 2018-11-22 17:06
수정 2018-11-23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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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失題) / 박팔양

나는 그대의 종달새 같은
이야기를 사랑한다
그러나 보다도 더 그대의
말 없음을 사랑한다
말은 마침내 한 개의 조그만
아름다운 장난감
나는 장난감에 싫증난 커가는 아이다

말보다는 그대의 노래를
나는 더 사랑한다
진실로 그윽하고도 황홀한
그대의 노래여!
붉은 노을 서편 하늘에 빗기는
여름 황혼에 그대의 부르는 노래
얼마나 나를 즐겁게 하느뇨

노래에도 싫증날 때 그대는
들창 가에 기대어 침묵한다
아아 얼마나 진실하고도
화려한 침묵인고!
나는 말없이 서 있는 아름다운
그대의 창 너머로 여름 황혼의
붉은 노을을 꿈과 같이 동경한다

-

여름 한낮의 뜨거운 태양 볕 아래 걷는 것을 좋아한다. 모자를 쓰지 않고 온몸에 햇볕을 바르며 걷다 보면 눈앞의 모든 세계가, 마음 안의 모든 풍경들이 단순해진다. 사랑하고 미워한 것들, 아파하고 그리워한 것들. 그들 모두가 심상 안에서 새끼를 낳은 초식동물처럼 고요해지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단순하게 살지? 오직 하나의 꿈을 지닌 채 세 끼 밥을 먹고 잠을 자고 걸을 수 있다면. 그 또한 시 정신은 아닐까. 박팔양은 사랑하는 이를 위해 단순해지기로 한다. 모든 수사법을 버리고 오직 그의 노래와 숨소리와 침묵을 사랑하기로 한다. 맨 나중엔 실어에 이를 것! 그는 호가 여수다. 가끔 저녁 먹고 커피 마시러 여수에 간다.

곽재구 시인
2018-11-2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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